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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공직자의 자세] 청렴결백의 덕목 "四不三拒" 정신으로 "우리 선조의 유산" 가슴에

by 구름과 비 2024.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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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은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덕목이다.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을 말한다.

청렴결백의 덕목 "四不三拒" 정신으로 "우리 선조의 유산" 가슴에

부끄러움 없이 깨끗한 마음씨와 사리사욕에서 벗어나 공평하게 자기 직분을 다하는 일을 처리하는 공직자의 자세라고 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인 황희, 맹사성, 정약용 등 저명한 청렴 위인들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공직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과거 조선왕조 시절, 청렴하고 강직한 괸 리를 선발하여 표창하던 제도를 청백리 제도라 한다. 말 그대로 관리는 청렴하고 깨끗한 성품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조선 개국 초에 이 제도가 실시됐고 중종 대에 정비를 거쳐 선조에 이르러 선발 절차와 포상규정 등이 정립됐다. 조선 왕조 500년간 218명의 청백리가 선발되었으며, 청백리 선발기준은 법전에 명문화된 기록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淸白, 勤儉, 敬孝, 厚德, 仁義 등의 품행이 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청백리로 선발된 관리들은 대체로 선비정신을 지키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청백리들이 불문율로 삼았던 원칙 四不三拒

청백리들이 불문율로 삼았던 원칙 四不三拒

고위공직자가 공직자에 있을 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와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를 이르는 말이다. 四不은 부업을 하지 않을 것, 땅을 사지 않을 것, 집을 늘리지 않을 것, 부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三拒란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인데,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는 거절할 것, 請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는 거절할 것, 자신의 경조사의 扶助를 거절할 것을 의미한다.

공직에 있으면서 부업을 한 동생을 호통치며 부업을 그만두게 했다는  조선 영조 때 관리인 김수평, 자신의 아내가 가난을 면해보려 시집올 때 가져온 비단옷을 팔아 땅을 샀다는 이유로 스스로 공직에서 물러난 풍기군수 윤석보, 대제학을 지내는 동안 지붕 처마 몇 치도 늘리지 못하게 한 김유'가 있다.

그리고 연안부사에 부임하는 동안 연안의 특산물인 붕어는 입에 대지도 않은 기건, 영의정이 꿀과 잣을 보내달라고 청하자 잣나무는 높은 산 위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속에 있다고 답을 보낸 청송부사 정붕 등의 일화가 四不三拒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국록을 받으면서 오해를 받거나 의혹을 살 만한 일을 해선 안된다고 다그친다.

대한민국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제도

1988년 우리나라에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 제도가 시행된 후, 청문회를 보면 흡사 고위범죄자 청문회를 보는듯한 인상을 준다. 고위공직자에게 과도하고 엄격한 도덕적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며 기본적이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만, 고위공직자라는 위치의 특권을 이용해 앞장서서 투기를 하고 범죄를 저질러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공직자가 청렴한 마음을 버리고 권한을 남용하여 사익과 실리를 추구하여 발생하는 사건들을 보면 국민들은 그 어떤 사건보다 더 분노하고 허탈감을 느낀다. 그로 인해 사회를 불신하게 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불만이 가득 차게 되므로 공직자의 청렴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공직사회에 대한 기대도 매우 높아지고 있는 오늘날, 공직자의 청렴한 마음가짐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에 우리 선조가 남겨준 정신적 유산인 청백리의 마음가짐과 사 불 삼거 정신을 공직자로서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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