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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國이란 기회를 놓쳐도 다음 기회를 기다릴 여유가 있는 나라, 대국에는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있다.
100년, 200년, 1000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로마, 영국, 미국 역사에도 주기적으로 위기가 찾아왔다. 개혁 전기를 놓쳐 위기가 깊어졌던 시대도 있었다. 그렇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 10년 20년 후 나라를 고쳐 세워 국가 수명을 연장하고 번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小國은 다르다. 항상 이번 위기가 결정적 위기라고 각오하고, 이번 기회가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다.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는 강하지만 작은 나라다. 기회 한번, 위기 한 번이 나라운영을 결판내다.
1970년대 초 두 나라 총리 골다 메이어와 리콴유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메이어가 우리는 잠시 한눈팔면 동지중해로 가라앉는다라고 하자 리콴유는 우리는 남중국해로 침몰하지요라고 받았다.
대국은 자기가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간을 골라 싸울 수 있는 나라다. 작은 나라는 상대가 도발한 장소. 도발한 시간에 맞서 싸워야 한다. 침략에 대비해야 할 장소는 많고 대비해야 할 시간은 짧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후 아랍 국가와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상승의 군대였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의 기습 일격으로 존망의 위기에 몰렸다. 방심 탓이었다. 작은 나라에게 자만심은 독약과 같다. 자신감과 자만심은 한 치 차이다.
한국은 긴 역사에서 싸울 시간과 장소를 선택한 적이 없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도 마찬기 지였다. 시간과 장소의 선택권이 적에게 있는 전쟁은 불리한 전쟁이다.
영국과 미국은 최성기에 상대가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전쟁을 벌인적이 몇 번 되지 않는다. 영국은 나폴레옹전쟁, 1, 2차 세계대전 정도다. 최강대국 미국도 원하지 않던 장소와 시간에 싸운 베트남전쟁에선 고전을 면치 못 했다. 본토에 총성이 울린 것도 일본의 진주만 기습, 나치의 런던 공습 밖에 없다.
일본의 식민지로 굴러 떨어진 조선 500년 역사에서 나라를 바로 세울 중흥의 기회가 몇 번 있었을까, 현군이었다는 영조와 정조 때가 기회였을까, 영명한 군주였던 정조는 유럽 세력에 의한 西勢東漸 시대의 새벽에 중국 옛 문체를 되살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 후론 기회다운 기회도 없이 미끄러져갔다. 독립 기회가 거의 사라져 버린 시대에 開化黨과 독립협회가 탄생했다.
대국과 소국 사이에 걸린 한국에게 절실한 건 역사의 興亡에 대한 감각이다. 대국들이 한 번 놓쳤던 기회를 두 번째, 세 번째에는 결코 놓치지 않았던 이유는 그 사회에 흥망의 감각이 쇠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은 興亡 감각을 1000년 제국 로마 역사를 통해 얻었다. 영국 역사가 기번은 유럽이 임박한 프랑스혁명으로 요동치고 식민지 미국의 독립전쟁 발자국 소리가 귓전에 울리던 때 20년 걸쳐 로마제국 쇠망사를 썼다.
몇 백 부 인쇄된 책의 절반은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식민지 미국 지도자들이 구입했다. 독일 역사가 몸젠은 독일 통일을 앞두고 유럽이 들끓던 1850년대 장장 50년 세월을 로마사 집필에 쏟아부었다.
국가가 혼란과 위기에 휩싸인 시대에 이들은 왜 로마사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흥망 감각 없이는 위기를 위기로, 기회를 기회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기의식과 흥망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지자 미국과 영국은 그 후 여러 차례 기회를 놓치고 위기를 키웠다.
최강 대국 미국 발밑에는 지금 놓친 기회와 바로 보지 못한 위기의 퇴적물이 쌓이고 있다. 덩 샤오핑과 시진핑 간 흥망 감각의 격차가 뻗어가는 중국과 벽에 갇힌 중국의 차이를 만들었다.
한국은 오랜 小國의 옷을 벗고 새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여기서 혼란을 키우는 세력이 혼란을 억제하는 세력을 누르면 모든 것이 허사다. 千載一遇의 기회이자 無間地獄의 입구이기도 하다. 興起의 기운과 沒落의 증거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기회를 걷어차고 위기를 불러들이면 역사의 패잔병, 세계의 낙오병이 된다. 정치하는 사람들, 그래도 괜찮다면 먼저 당신 앞 거울 속 얼굴에 침을 뱉어라.
강천석 칼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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