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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실학자의 대표 "정약용"을 찾아서

by 구름과 비 202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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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며 실학자의 대표 정약용은 4762년 경기도 광주부 조부면 마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 쓰는 데 있고 아껴 쓰는 근본은 검소하게 말하는 데 있다. 검소한 연후에는 능히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한 연후에나 능히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한 자가 되는 그 자체가 백성을 다스리는 수장의 의무다라며 편지로 남겨다.

정약용의 외가는 해남 윤 씨이며 어머니는 국문학사를 공부할 때에 꼭 나오는 문인인 윤선도의 후손이다. 부친의 관리 생활을 보고 자람으로써  백성 중에 사회적 약자들인 홀로 사는 노인, 과부, 홀아비, 고아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할 것인지를 아버지를 보고 깨달았다. 외가의 학문과 친가의 실천이 정약용의 이론과 실천에 도움을 준 것이다.

여유당. 정약용의 생가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은 현재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다. 그 옛날에는 이곳을 소네 또는 두릉이라고 했고 정약용은 5대조부터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이 고고하고 자태로 은근히 나그네 유혹하지만 정작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곳은 여유당의 오른편을 돌아 뒤편 동산의 정약용의 묘소이다. 정약용은 여유당을 휘감고 도는 한강의 여유로운 흐름을 보고 있다,

거중기

그곳에는 정약용의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는 정약용의 친필 서한 간찰, 산수도 등과 대표적 경세서인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사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실물 크기의 4분의 1과 2분의 1 크기의 거중기와 녹로가 눈길을 끈다. 97년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화성을 쌓을 때 역학적인 원리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는 데 사용되어 백성들의 노고를 덜어주었던 거중기와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서 만든 녹로도 있다.

 

기념관 옆에는 문화

다산 정약용 기념관

관도 있다. 문학관에는 정약용의 인간적 고뇌와 삶의 철학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하여 정약용의 꿈, 새로운 학문의 세계로 그리고 유배지에서 그리운 마현, 새로운 조선의 발견, 다산 근대의 길 등 5가지 주제를 가지고 그래픽 패널로 전시하고 있다. 

끝으로 문학관에서는 정약용의 사상과 삶의 철학이 잘 드려 나는 다산의 삶이라는 애니메이션 영상물이 자동으로 상영되고 있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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